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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장시간 노동 문제와 노동시간 논의사회복지 2023. 5. 10. 18:07
머리말
최근 한국에서는 현행 주 최대 52시간 노동과 관련해 노동시간을 어떻게 조정할지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노동시간 규정을 기업의 필요에 맞추어 더 유연하게 적용하자는 주장이 있는 한편, 그러한 변화가 노동자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도 크다.
미국 역시 노동시간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국에서도 장시간 노동 문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주 4일제 등 노동시간 단축 주장이 이미 법제화 단계로 이어지고 있으며 초과 노동수당 대상을 넓히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 글에서는 미국의 노동시간 현황과 관련 이슈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미국의 노동시간 현황
미 노동부에 따르면 초과노동에 대한 연방 규정은 공정근로기준법(FLSA)에 포함되어 있 다. 16세 이상 성인 노동자가 이 조항의 적용대상인데, 주 40시간 이상 일할 경우 추가노동시간에 대해 정규 임금의 최소 1.5배를 받게 된다(추가노동수당 대상에서 제외되는 면제 대 상은 아래에서 서술). 다만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은데, OECD 회원국 중 최대 노동시간을 규정하지 않은 국가는 호주, 뉴질랜드, 영국 그리고 미국뿐이다.
[그림 1]은 2023년 2월 민간부문의 산업별 주당 평균 노동시간을 보여준다. 전체 노동자 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34.5시간인 한편 산업별 격차가 큰데, 광업·벌목업에서 45.7시간으 로 제일 길고 레저·환대 서비스업은 25.5시간으로 상당히 짧다. 즉 산업에 따라 노동시간이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미 노동통계국에서는 제조업의 초과노동시간을 발표하는데, 전체 제조업의 2023년 2월 평균 초과노동시간은 3시간으로 나타났다.
OECD는 전체 노동자의 노동시간뿐만 아니라 고용형태에 따른 노동시간을 발표했다. [그 림 2]와 같이 2021년 기준 전체 미국 노동자의 주 평균 노동시간은 38.8시간이었는데, 전일제 노동자는 41.4시간, 시간제 노동자는 18.4시간이었다. 특히 전일제 노동자의 경우 평균적 으로 주당 정규 노동시간인 40시간을 넘게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2019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 전일제 노동자 중 48%만이 주 40시간 이 하로 일한다고 응답했다. 즉 52%는 주 40시간을 초과하여 일하는 것이다(41~49시간 13%, 50~59시간 21%, 60~69시간 11%, 70시간 이상 7%).
다른 나라와 비교하더라도 미국의 노동시간은 매우 긴 편이다. OECD 발표에 따르면 2021 년 기준 미국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OECD 37개국 중 멕시코, 콜롬비아(2020년), 코스 타리카, 칠레, 대한민국 다음으로 높았다(그림 3 참조).
더 네이션지는 몇 주에 걸친 초과노동이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주 55 시간 일하는 노동자는 40시간 일하는 노동자보다 인지기능이 악화되며, 6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의 경우 처음 3~4주 동안은 약간의 능률 향상을 보이지만 이후 생산성 하락을 경험하 고, 이는 다시 회복되기 어렵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8주가 지나면 주 60시간 노동자의 생산성은 주 40시간 노동자의 생산성보다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주 55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 는 주 35~40시간 일하는 노동자에 비해 뇌졸중 사망 위험이 35%, 심장병 사망 위험이 17% 더 높다는 주장도 있다.
초과노동수당 규정 관련 논의
공정근로기준법은 초과노동에 관해 시간 제한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초과노동 시 정규임 금의 1.5배를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연방법 외에 주 차원에서도 별도 규제가 실시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는 주 40시간 규정뿐만 아니라 하루 8시간 이상 근무하거나 주 6일을 초 과하여 근무한 경우에도 초과분에 대한 수당 지급을 보장한다. 콜로라도, 켄터키, 미네소타, 로드아일랜드 주 등 역시 자체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한편 초과노동수당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 면제대상이 있다. 공공기관에 고용된 경찰 및 소방 노동자, 병원 및 요양원 직원은 이 조항에서 제외된다. 또한 주당 684달러 이상 급여를 받는 관리직, 임원직, 전문직 종사자(고급지식 및 창작 분야), 컴퓨터 관련 노동자, 그리고 급 여 수준과 관계없이 외근 영업직 노동자 역시 면제된다. 그 외 신문배달원이나 임시 베이 비시터 등도 면제대상이다.
초과노동수당 면제대상에 대해서는 지금도 치열하게 논의 중이다. 최근에는 일당제 급여 를 받는 고소득 노동자가 초과노동수당 면제대상에 포함되는지에 관한 판결이 이슈가 되었 다. 주 84시간씩 일하면서도 초과노동수당 적용 없이 일당제에 근거해 연간 20만 달러 이 상을 번 마이클 휴이트와 사측인 헬릭스 에너지 솔루션 그룹 간의 법적 분쟁에서, 대법원은 휴이트가 사전에 정해진 급여를 받지 않고 근무 일수에 따라 돈을 받았기 때문에 "급여기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초과노동수당 적용대상에 포함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한편 관리자 직함을 오용함으로써 사용자가 초과노동수당 의무를 회피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관리자에 대한 법적 정의가 모호한 탓에 일부 노동자는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관리자 로 오분류되기도 하는데, 이 점을 이용하여 사용자가 초과노동수당 지급 의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최근에는 초과노동수당 적용대상을 확대하려는 시도들이 나오고 있다. 프라밀라 자야팔 워 싱턴 주 하원의원은 최근 면제기준 급여를 상향하는 문제와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었고, 대통령이 해당 문제에 매우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나아가 바이든 행정부는 초과 노동규정에 대한 규칙 제정 통지 제안(규칙 제정 및 변경에 대한 공고)을 5월에 발표하겠다 고 예고했다.
노동시간 단축 논의
한편 노동시간을 더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영국은 주 4일제 시범운영을 통해 근무일 및 근무시간을 줄이면서도 급여는 기존 수준을 유지하는 실험을 진행한 바 있 다. 실험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수면, 스트레스 수준, 개인생활 및 정신건강 측면에서 여러 이점이 있었다고 응답했고 전년동기대비 매출이 늘어나고 퇴사율이 낮아지는 등 기업에도 이익이라는 결과가 나와, 61개 시범기업 중 56개 기업이 주 4일제를 계속 시행하겠다고 밝혔 다. 미국과 아일랜드에서 진행된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시범운영 종료 후 주 5일제로 돌아간 기업은 없었다.
미국에서도 본격적으로 주 4일제를 시행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의 마 크 타카노 연방 하원의원은 최근 주 32시간 노동을 표준으로 하고 초과노동수당 적용대상 을 확대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타카노 의원은 노동자의 생산성은 증가해 왔지만 그 에 걸맞은 일·생활 균형은 이루지 못했다며, 생산성과 일·생활 균형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시간 단축 문제는 이미 오래된 이슈인데, 1932년 미국 상원이 주 30시간 법안을 통과시켰고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역시 법 안을 지지했지만 끝내 좌초된 바 있다.
특히 미국의 테크 산업을 중심으로 주 32시간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서 파나소닉이 주 32시간제를 도입한 데 이어,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 업체인 킥스타터 역시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시간 단축은 추가인력 고용문제와 연결되지만, 생산성 증대와 이직률 감소를 통해 그 비용을 상쇄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 외에도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된 여러 제안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40시간 정규 노 동시간을 유지하면서도 5일간 하루 8시간 대신 4일간 하루 10시간 일하는 선택권을 제공하 자는 주장, 2주 단위의 9일 근무제를 통해 격주 금요일을 휴일로 만들자는 주장 혹은 주 4.5일제를 통해 매주 금요일 점심에 퇴근하도록 하자는 제안도 있다.
주 32시간제 법안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인적자원관리협회의 에밀리 디킨스 최고책임 자는 해당 법안이 인력 부족을 악화시키고 노동비용을 높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의 다니엘 해머매쉬 명예교수는 주 4일제가 일부 산업에서만 실현가능하 며, 자동차 제조업 등에서는 생산량이 감소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정해진 시간 동안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서비스업에서는 추가인력 고용 없이는 근무시간 단축이 어렵다는 분 석도 있다.
그럼에도 일리노이 대학의 로버트 브루노 교수는 노동자의 번아웃 이슈가 전 산업에서 나 타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노동시간 단축이 반드시 필요하며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일부 산업의 경우 당장 적용이 어려울 수 있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며, 산업분야별로 시범 운영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노동시간 이슈와 노동조합의 역할
장시간 노동 및 과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자의 목소리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노조 설립 바람이 불고 있는 스타벅스 노조의 경우, 모든 매장의 공통문제로 저임 금, 인력 부족 및 코로나19와 함께 과로가 꼽힌 바 있다. 아마존 노조 설립 추진 당시에는 성수기 주 60시간 근무가 노조 설립 이유 중 하나로 꼽혔다.
뿐만 아니라 철도 파업에서도 과로 문제가 파업 원인 중 하나로 제기되었고, 게임 분야에 서는 계약직 노동자가 크런치 기간(마감 직전 몇 주간 휴일이 거의 없이 하루 12~14시간 근 무)의 과도한 업무량과 이후 해고 조치에 맞서 노조 설립을 추진했다. 뉴욕 몬테피오레 메디컬 센터 수련의들의 노조 결성 배경에는 주 80시간 근무 및 28시간 교대근무 등의 문제가 포함되었다.
맺음말
장시간 노동 문제는 미국의 당면 과제이다. 연방법에서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규정하지 않 기에 정치권에서는 초과노동수당 적용대상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기업의 과도한 노동력 사용 을 견제하려 한다. 일각에서는 노동시간을 줄이면서도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 기되며 관련 법안까지 제출된 상황이다.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리지만, 양측 모두 모든 산업에서 단번에 주 4일제 를 적용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는 동의하는 듯하다. 다만 여러 시범운영을 통해 어느 산업에 보다 잘 적용할 수 있으며, 잘 적용되지 않는 산업의 경우 정책을 안착시키기 위해 어떻게 산 업구조를 혁신할지 논의가 필요하다는 로버트 브루노 교수의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 장 비현실적이라고 마냥 무시하기에는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높은 것도 사실 이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노동시간을 연장해야만 생산성을 늘릴 수 있고 더 많은 이윤을 낼 수 있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장시간 노동 문제가 심각 할 뿐 아니라 일·생활 균형에 대한 노동자의 요구가 크다. 기업 역시 노동시간 단축의 긍정적 측면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주 4일제를 적극 고려하고 있다. 비록 주 4일제 시범운영의 결 과가 당장 모두에게 적용되기 어렵다고 해도 그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노동시간 조정 에 관한 논의는 생산성과 일·생활 균형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출처 : 국제노동브리프 / 미국 : 장시간 노동 문제와 노동시간 관련 논의 / 홍성훈 (미국 럿거스대학교 노사관계 및 인적자원관리 전공 박사과정) /2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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