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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소멸의 위기와 역설적 현상: 가덕도 대항마을 사례사회복지 2023. 5. 3. 15:07
1. 사례 개요와 분석 방법
본 연구의 분석사례는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의 직접적인 사업 대상지인 가덕도 대항마을이다. 대항마을은 부산시 강서구 가덕도동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가덕도동은 가덕도 섬을 별도의 행정구역으로 구분한 것으로, 가덕도동 내에는 다시 5개의 법정동이 있다. 동선 동, 성북동, 눌차동, 천성동, 대항동이 그에 해당한다. 이 5개 동은 사실 가덕도 섬에 있는 5 개의 마을을 의미한다. 가덕도 섬 안에 산으로 구분된 5개의 마을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고, 그것을 법정동으로 구분해 놓은 것이다. 그래서 가덕도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불려오는 방식 대로 동(洞)이라는 글자를 붙이지 않고 그냥 마을 이름만 부른다. 예를 들어, 대항, 천성, 눌차와 같이 동자 없이 과거부터 구분되어 온 마을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 본 연구 의 사례가 되는 곳이 대항(이하 대항마을)이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 이루어지는 직접적인 사업 대상지가 바로 대항마을인 것이다. 그래서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의 위치를 공식적으 로도 ‘대항항 일원’으로 표기하고 있다(강서구청, 2022). 다른 마을과는 달리 대항마을은 동 남권 신공항이 직접 건설되는 부지이기 때문에 공항 건설과 동시에 사라질 예정이다.
대항마을의 인구는 306가구 총 480명이다. 가덕도동 전체 인구가 4,134명이라는 점에서 대항마을의 인구는 그 중 약 11%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2023년 강서구청 홈페이지와 2021 년 가덕도동 행정복지센터 통계 기준). 그러나 사실 대항마을의 주민은 이보다 더 적고 가덕 도동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더 낮다. 그 이유는 대항마을은 대항마을(본마을)과 새 바지(대항마을의 동쪽으로 연결된 작은 마을)와 외항포(대항마을의 남쪽으로 연결된 작은 마 을)로 또 나누어져 있어서 대항마을(본마을) 자체의 인구는 그보다 더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 리고 480명이라는 마을주민 수치는 주민등록 통계가 기준이기 때문에 실제 대항마을에 거주 하는 현지 주민의 인구는 더 적다. 주민등록상 등록만 해 놓았을 뿐 여러 이유로 실제 거주하 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 시점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 거주하는 대항마을 주민은 약 200명대 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김민주, 2019). 이처럼 대항마을은 가덕도 섬의 맨 끝(최남단)에 위치 하면서 여타 마을 중에서도 비교적 작은 마을에 해당한다. 작은 마을이면서 또 섬의 특수성 때문에 주소 상으로는 부산시에 속하지만 과거에는 부산 시민들조차 잘 몰랐던 가덕도 대항 마을은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의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이제는 과거와 달라졌다.
구체적으로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의 진행 과정을 보면, 우선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 령 당선인이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위한 적당한 위치를 찾겠다는 말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2006년에 건설교통부에 공식적인 검토를 지시 한 후 2007년에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이 타당성이 있다는 발표를 하면서 가속화되었다. 2009년 이명박 정권에서도 동남권 신공항 사 업의 추진 의사를 보였다. 하지만 2011년 당시 동남권 신공항 후보지였던 가덕도와 밀양이 경쟁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두 지역 모두 타당성이 낮다는 결과 발표로 사업은 철회된다.
그러나 2012년에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와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다시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언급하면서 재추진되었다. 이후 2014년에 국토부는 동남권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발표를 하게 되고, 2015년 6월에 다시 타당성 조사를 진행한다. 이때 역시 후보 지는 가덕도와 밀양이었다. 하지만 2016년 6월에 기존의 김해공항 확장을 대안으로 제시하 며 가덕도와 밀양에 대한 사업 계획을 철회하게 된다. 두 번째 사업 철회인 것이다.
하지만 2017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동남권 신공항을 관문 공항으로 건설하겠다”는 공 약을 하고, 2018년에는 오거돈 당시 부산시장의 공약으로 다시 동남권 신공항이 추진되는 분 위기가 되었다. 이때 이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사건이란 2020년 오거돈 부산시장이 강제추행 혐의로 사퇴하면서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진행된 것이었는데, 당시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당과 야당 모두가 가덕도의 대항마을을 사업대상지로 하는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공약하며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결국 2021년에는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 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는데, 이때 여러 언론매체에서는 ‘국회의원 181명의 압도적인 찬성’이 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정치권에서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이후 2022년에는 국무회의에서 ‘가 덕도 신공항 건설 추진계획’을 의결하여 동남권 신공항 조성 계획이 명확히 확정되어 2035년 개항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본 연구는 이처럼 마을소멸이 확정된 대항마을을 대상으로 장소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분석을 위해 현지조사를 통한 관찰과 인터뷰 방법을 적용하였다. 현지조사를 통한 분석방법을 적용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본 연구는 특수한 이력(두 번의 사업 철회와 세 번째 사업 추진)을 지닌 ‘마을’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고, 또 마을의 변화에 관한 내용을 다루기 때문이 다. 그리고 마을을 장소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해당 마을(장소) 방문이 필수적이다. 사실, 마을단위 연구가 쉽지 않은 이유가 바로 현지조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지조사를 하지 않 으면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특히 공식적인 통계에서는 적은 인구의 마을은 별도로 조사되지 않고 몇 개의 마을을 묶어서 한 개의 집계구로만 조사된다. 그래서 실제 생활 단위 중심의 마 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연구가 쉽지 않는 것이다(윤정미・조영재, 2021: 105, 이병기, 2010: 782).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실제 거주민들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마을의 규모가 적은 경우가 꽤 있고(특히 비도시지역), 본 연구의 사례인 대항마을도 그에 해당한다. 이런 경우는 현지조 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본 연구에서도 세 차례 현지조사(2022년 8월 23일-24일, 2022년 12 월 10일-11일, 2023년 1월 16일)를 진행하였다.
현지조사는 마을주민 인터뷰와 마을 내 장소 방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인터뷰는 총 10 명을 대상으로 진행하였다. 남성 5명과 여성 5명이며, 연령대는 40대 2명, 50대 2명, 60대 1명, 70대 3명, 80대 2명이다. 이들 중 8명은 대항마을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이 들이고, 70대와 80대 각 1명은 결혼 이후부터 계속 거주하고 있는 이들이다. 이처럼 본 연구 에서 직접 인터뷰한 내용과 함께 기존의 선행연구에서 대항마을 주민을 인터뷰한 내용과 또 언론매체에서 진행한 인터뷰 내용도 함께 활용하였다. 그리고 장소 방문은 마을 자체를 장소 로 보기 때문에 마을 전반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과 마을 내 장소자산 발굴이 이루어진 곳(장 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2. 분석결과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에 따라 사업의 대상지인 가덕도 대항마을은 소멸 위기에 처해있 다. 이미 법률 제정이나 계획수립 완료 등 제도적 단계는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가 운데 대항마을은 앞서 이론적 배경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존재감이 더 부각되거나 드러나 고 있다. 소멸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을은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마을의 존재감 자체의 향상 도 있지만(첫 번째 역설), 현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소의 관점에서 볼 때 그와 함께 몇 가지 현상이 더 목격되었다. 마치 초신성 신드롬처럼 소멸할 마을이지만 전력을 다해 전에는 없던 마을 내 장소자산이 발굴되고 있고(두 번째 역설), 소멸할 마을이지만 마을주민들이 지니는 장소애착의 마음은 더 강화되고 있으며(세 번째 역설), 그리고 소멸할 예정이지만 각종 개발 에 따라 으레 나타나기 마련인 무장소성의 모습도 보이고 있다(네 번째 역설). 각각에 대해 구 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소멸하는 마을의 대외적 존재감 향상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마을이나 인접 마을 혹은 방문 경험이 있는 마을이 아니라면, 특정 마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작은 마을이 대외적으로 알려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 만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에 따라 대항마을은 사례개요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작은 마을임 에도 불구하고 그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마을의 대외적 존재감이 높아진 것으로, 이는 마을 이 언론매체에 등장하는 정도가 증가하는 현상과 마을에 방문하는 외부인들의 증가, 그리고 마을 내 택지 등에 외부 투자자들의 투자 목적의 개발 행위 증가를 통해 알 수 있다.
우선 ‘가덕도’와 ‘가덕도 대항마을’을 키워드로 언론매체에 등장한 빈도를 보면, 지난 32년 간 점점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특히 2004년부터 시작하 여 2006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앞서 사례개요에서 살펴본 것처럼 2003 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의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위한 적당한 위치 모색 발언과 이후 2006년에 공식적인 검토 지시, 그리고 2007년에 타당성 있는 사업이라는 결과 발표 등에 따 른 것이다. 이후부터는 부침(浮沈)은 있으나,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급격한 증가를 보이 는 횟수가 3차례 정도 나타난다. 이는 사업 백지화(철회)와 재추진 등의 반복에 따른 것이다.
언론매체에 등장한 키워드 빈도를 보면 ‘가덕도’ 키워드(총 35,068건)가 ‘가덕도 대항마을’ 키워드(총 669건) 보다 월등히 높으나, 이는 동남권 신공항 건설의 대표 지명이 가덕도라는 점에서 비추어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가덕도 내 작은 마을인 ‘가덕도 대항마을’ 의 키워드가 총 669건 등장한 것이 결코 적은 수치는 아니다. 특히 1990년부터 2003년까지는 불과 106건 등장한 것에 비해,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563건 등장한 것은 특정한 작은 섬 마을이 언론매체에 등장한 수준으로는 적지 않다. 이처럼 분명한 사실은, 대규모 정부사업으 로 인해 소멸 위기에 처한 마을과 그 마을이 속해 있는 곳(섬)의 지명이 널리 알려졌다는 점 이다.
그림1. 언론매체 등장 빈도 다음으로, 대항마을에 방문하는 외부인들의 증가 현상이다. 외부인의 대부분은 마을에 방문 하는 관광객을 의미하지만, 한편으로는 투자 목적으로 마을 내 부동산을 구입한 투자자를 말 하기도 한다. 관광객이나 투자자 모두 마을이 외부에 알려지게 됨으로써 마을에 관심을 보인 이들이다. 관광객은 전형적으로 외부에 있는 이들이기 때문에 방문지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 는다면 방문이 불가하다. 투자자 역시 경제적 가치가 없는 자산이라면 자산이 있는 곳에 방문 하지도 않고 그곳의 자산을 구입하지도 않는다. 외부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관심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자산 가치도 높아져 투자자의 관심도 끌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러한 관광객과 투자자의 증가를 보여주는 공식적인 통계자료는 없다. 대신, 대항마을 현장에 방문하여 실제 현장 관찰과 마을주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관광객 증가 현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은 현장 방문에서 곧바로 직접 확인할 수 있 다. 자동차를 이용해서 마을에 방문하는 관광객 증가와 그에 따른 소음 및 안전 그리고 주차 문제가 그에 해당한다. 그래서 대항마을 주민들이 소음은 물론이고 안전 상 위협을 겪는 고통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노컷뉴스, 2010). 마을이 갑작스럽게 외부로 알려지면서 자동차 도로나 주차장 등이 채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2022년 현재는 도로 정비가 어 느 정도 되었고 주차장도 갖추어졌으나, 여전히 주말에는 주차문제로 마을주민이나 관광객 모두 힘들어 한다. 평일 매일 일정한 시각에 행정기관에서 주차 단속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마을의 존재가 외부로 널리 알려진 것을 보여주는 이러한 관광객의 증가 현상은 한편으로 는 그로 인한 부작용을 낳았다. 물론 그 또한 마을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래 마을주 민 인터뷰는 관광객 증가와 주민 입장에서 볼 때 느끼는 불편함 등을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언론매체를 통해서는 그동안 외지인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 우수한 자연 생태계를 잘 보존 해온 가덕도가 늘어난 관광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고 보도되기도 했 다(연합뉴스, 2022).
“평일이나 주말이나, 외지인(관광객을 의미)들이 하도 많이 와서 마을 주민들보다 더 많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쓰레기도 아무데나 버리고 가고 … 화장 실이 급하다고 아무 집(마당)에나 들어가서 볼일 보려고 하고 … 외지인들이 많아지 기 전에는 대문 없이 사는 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외지인도 많이 오 고 시끄럽고 해서 대문 없이는 못살 정도가 되었으니 … 하여튼 옛날 같지 않게 외 지인들이 너무 많습니다.”(A, 70대, 남성)
이와 함께, 마을 내 택지 등에 외부 투자자들의 투자 목적의 개발 행위 증가 역시 마을의 대외적 존재감을 보여준다. 투자자들은 개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었을 때 투자 행위를 하게 되는데, 투자 가치는 정부의 대규모 개발 계획이 수립되고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면 더 높아진다. 그동안 한 번도 들어 본 적도 없는 곳에 특별한 이유 없이 토지나 주 택을 구입하지는 않으며, 또 상업 시설 등도 건축하지 않는다. 정부의 대규모 개발은 대규모 자금 투입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각종 개발 수요도 생기지만, 더욱 확실한 수익은 토 지나 건축물 등에 대한 보상금이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라는 대규모 정부 사업 계획에 따라 마을의 토지가 국가에 의해 수용되기 때문에 토지를 소유한 대항마을 주민들에게는 보상금이 지급된다. 따라서 외부인의 투자는 곧 보상금 수익이 주목적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2021 년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 통과에 따라 가덕도의 신축공사 허가 건수는 3배 증 가하였고, 투기성으로 의심되는 이러한 사실은 부산시에서도 충분히 인지하여 관련 대책(개발 행위허가 제한 고시)을 세우기도 했다(KNN, 2022). 마을주민 수 역시 비정상적 증가를 보이 기도 했다. 단적으로 언론매체의 보도에 따르면(한겨레21, 2021), 대항마을의 주민수가 동남 권 신공항이 다시 추진되기 직전인 2020년 10월 말 272가 구 415명에서 2021년 3월 말 306가구 480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불과 5개월 사이에 갑작스럽게 34가구 65명이 증가한 것이다. 이는 아래와 같이 역시 대항마을 주민들로부터도 확인된다. 문제의 심각성 여부를 떠 나 이러한 현상 자체는 마을이 대외적으로 알려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떻게 알았는지 전부 외지인들이 먼저 우리 땅을 우리한테 싸게 사서 비싸게 보 상 받는 거지.”(B, 70대, 여성)
“다 보상 문제 때문에 갑자기 집을 짓고 이러거든. 이 집을 이렇게 지어놔도 아무 도(주소지를 대항마을로 해둔 집주인인 외지인을 의미) 안 왔어요. 아직 한 번도 안 오고…”(KNN, 2022)
“공항이 들어오면 저희는 아무 이득도 없잖아요(외부 투자자들의 이득과 비교). 생활터전만 잃지. 저 조그마한 집 하나 보상받아서 도시 가서 실제로 생활 못해 요.”(KNN, 2022)
“대항동 일대 땅은 70∼80%가 외지인 소유로 알려졌다.”(한겨레21, 2021)
2) 마을 내 장소성 자산 발굴 확대
마을소멸을 앞둔 대항마을 내 장소성 자산은 오히려 부각되고 있다. 마을 자체를 하나의 장 소로 볼 때 그 장소의 부각은 앞서 논의한 ‘마을의 대외적 존재감 향상’의 내용과 같은 맥락 이다. 동시에, 마을 내 장소성 자산도 부각되고 있는데 그 부각이란 바로 장소성을 지닌 장소 자산의 발굴을 의미한다. 이에 해당하는 대항마을의 사례는 ‘대항항 인공동굴’, ‘대항새바지 인공동굴’, ‘둘레길’, ‘어촌체험마을’, ‘외양포 포진지’ 등의 발굴 및 조성 사업이다.
여기서 두 곳의 인공동굴과 외양포 포진지 정비 사업이 진행된 곳은 대항마을의 어두운 역 사를 보여주는 대표적 장소이다. 이 장소는 과거 일제가 러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때 군사 요새 로 사용하기 위해 대항마을의 외양포에 포대사령부를 구축하면서 생긴 것으로, 이때 일제는 포진지 일대 땅을 강제로 뺏고 주민들을 강제동원해서 만들었다. 따라서 이 포진지가 위치한 곳은 비단 마을주민 뿐 아니라 일제의 식민 지배를 경험한 국민 모두에게 역사적 가치와 의 미, 그리고 공유된 아픈 경험의 장소성을 지닌 장소인 것이다.
이런 장소는 대항마을의 해안가와 마을 내 공터에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오고 있었고 외 부에도 드물게 알려졌지만, 그렇다고 별도로 관리되지는 못했다. 오히려 아래 마을주민의 말 대로 아이들의 놀이터 정도였지만 언제부터인가는 그 마저도 아닌 그냥 마을의 한 공터 정도 로 존재할 뿐이었다.
“예전에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 정도였지. 드물게 뭐 (조사)하러 오는 경우도 있었 는데, 그 뿐이고 그냥 있었지.” (C, 80대, 여성)
그러다 2017년에 본격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관심이 높아졌다. 그 관심이란 곧 장소 로서의 조사 및 보존과 관리 그리고 관광자원(명소)을 위한 예산투입이었다. 지역의 한 매체 에서도 언급하듯이 ‘(부산)강서구의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장소’로 여기면서 50억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 조성사업을 하게 된다(국제신문, 2022). 그런데, 이는 2016년에 동남권 신공항 건설 추진이 두 번째로 다시 무산되자 부산시가 2017년에 별도의 가덕도 종합개발계획을 추 진하면서 예산투입 등의 힘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에 의해 가덕도는 물 론이고 마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 계기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대항마을 사람들의 인터뷰를 실은 김민주(2019: 260)의 연구 중 한 인터뷰 내용과 대항마을 주민에 대한 한 신 문 칼럼 내용을 보면 어느 정도 유추가능하다.
“같은 부산이라고 해도 그동안은 알지도 못했으면서 신공항 건설로 인해 다들 아 는 체한다.” (김민주, 2019: 260)
“참으로 안타까운 점은 과거 한 지역 정치인은 가덕도 표(票)는 마을 인구가 적어 서 고작 몇 표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 굳이 선거운동을 할 필요는 없다 는 말까지 한 적도 있었다. 이 말을 들은 가덕도 주민들은 지금도 그때를 또렷이 기 억하고 있다.” (대학지성 In&Out, 2022)
2016년 당시 비록 동남권 신공항 건설 추진이 두 번째로 무산(철회)되었지만 동남권 신공 항 건설 추진 덕분에 마을이 알려져 마을 내 장소성을 지닌 자산 발굴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2021년에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그 이전보다 더 실현성 높게 다시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이 추진되면서 대항마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그에 따 라 포진지 장소는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에 대한 관리 역시 그 이전보다 는 강화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마을 내 장소성 자산이 부각되는 동시에 마을소멸도 진 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소멸될 마을에 예산투입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드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가장 큰 난점은 … 가덕신공항 예정 부지라는 사실이다. … 향후 인공동굴 근처 해안산책로는 철거될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없애야 할 공간인 셈이라서 구(부산 강서구) 역시 적극적으로 예산을 투입하기 어렵다. … 구 관계자는 “여전히 대항항 포 진지 인공동굴을 찾는 관광객이 있다. 낙석의 위험이 없다고 하기 어려워 낙석방지 망을 설치하는 것이다”며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지만 곧 철거될 시설물에 많은 예 산을 들이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국제신문, 2022)
이와 함께 ‘둘레길’과 ‘어촌체험마을’ 등의 사업도 마을의 장소성 자산을 발굴한 것이다. 둘 레길인 국수봉이나 외양포 고개 등은 마을주민들의 생활반경 내 주요 지점으로서 장소에 해 당하며, 어촌체험마을은 ‘숭어들이’라는 독특한 방식의 마을 공동체형 숭어잡이를 해오고 있 는 대항마을을 장소로 삼아 조성된 사업이다. 모두 대항마을의 장소성 자산을 활용한 것으로, 이 역시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 추진으로 대항마을에 대한 관심이 증대함에 따라 지방자치 단체가 주도하여 대항마을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예, 어촌 뉴딜 300사업)에 선 정된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다(강서구청, 2019). 이처럼 특히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 추진 이전의 과거와 비교할 때 소멸예정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마을 내 장소성 자산은 더 적극적 으로 발굴되고 관광자원화 되면서 관리되고 있다.
3) 마을주민의 장소애착 강화
여느 섬마을처럼 대항마을 주민의 평균 연령도 높은 편이다. 이는 주민등록상 기재된 주민 들이 아니라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의 평균 연령을 말하는 것으로, 현장 주민들의 의견과 실제 인터뷰한 주민들의 연령대를 두고 대략 판단해보면 60대는 훨씬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예상은 주민등록상 거주자의 평균 연령대와는 다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여러 목적에 따라 거주지 주소만을 대항마을로 이전시킨 경우가 꽤 있기 때문이다. 특히 투자 목적의 외지인들의 영향이 크다.
“주소만 옮겨 놓고서는 실제로는 여기서 살지 않은 집(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식 들도 부산(시내)에 살면서 주소지는 여기에 둔 집도 있고. 외지인들이 보상 받으려고 여기 집 짓고 주소지를 옮긴 경우도 있고. 그 사람들 전부 여기 실제 살지 않습니 다.” (D, 60대, 남성)
따라서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은 오랫동안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사는 경우가 많고, 젊어서 결혼하면서부터 살고 있는 이들도 많다. 이들에게 장소로서 대항마 을은 장소애착의 대상이 된다. 장소애착은 장소성을 지닌 이들의 의견이나 생각으로 알 수 있는데, 대항마을 주민들로부터도 이는 확인된다. 장소애착을 확인하기 위한 구체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다. 장소애착 중 장소정체성의 경우 “현재 살고 있는 마을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자리잡고 있는가?”, “현재 살고 있는 마을이 본인의 삶과 어떤 관계로 자리 잡고 있는가?”, 또 장소의존성의 경우 “현재 살고 있는 마을에 얼마나 의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가?”, “현재 살고 있는 마을을 떠나서 다른 마을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 는가?”, 그리고 장소근원성의 경우 “현재 살고 있는 마을에 어느 정도의 소속감을 지니고 있 는가?”, “현재 살고 있는 마을에 얼마나 뿌리내렸다고 생각하는가?”등의 질문으로 확인할 수 있다(김민주, 2019). 이러한 질문에 대한 응답을 통해 마을주민들이 장소애착이 형성되어 있 다는 점은 이미 김민주(2019)의 연구에서 드러난다. 여기에 더해 마을소멸을 염두에 둔 심정 이 어떤가에 대한 대답은 아래와 같다.
“이제 쫓겨나면(마을소멸을 의미) 어디서 살아야 하나? 평생을 여기서만(대항마 을) 살아와서 여기서만 살 수 있는데, 어디 가서 어떻게 살 수 있나? 계속 나가라고 하니(마을소멸을 의미) 더 여기 말고는 살 곳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A, 70대, 남성)
“이 마을에서 태어나서 고기 잡아 먹고 살면서(어부) 나이 들어가는 마당에 어디 로 가라고(마을 소멸을 의미) 하면 막막할 뿐입니다. 한 평생을 살아오면서 든 정도 있고 조상들이 물려준 것도 있는데 마을이 없어진다는 생각이 들 때 마다 마음이 안 좋습니다.” (E, 70대, 여성)
“뉴스에서도 계속 공항 들어온다고 떠들고 이렇게 조사하고 하는 것 보니 확실히 없어지긴 할 건데(마을소멸을 의미),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이 마을이 나한테는 더 가치가 있고 더 마음이 간다. 그런 것은 이 부락(대항마을)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모 를 거다.” (F, 80대, 여성)
마을이 소멸되는 상황을 자신들을 마을에서 나가라고(또는 어디로 가라고) 하는 것으로 표 현하는 마을주민들은 마을소멸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수록 더욱 더 현재의 대항마을에서 사 는 것이 더 마음에 좋고 편하다고 말하고 있다. 마을소멸이 언급되지 않는다면 이들이 굳이 그런 생각을 별도로 할 이유가 없다. 마을에 대한 애착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여 있을 뿐일 텐 데, 마을소멸을 언급하면서 그 애착이 드러나고 또 강해지게 된 것이다. 위에서 A가 “∼계속 나가라고 하니 여기 말고는 더 살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나, E처럼 ”∼마을이 없어 진다는 생각이 들 때 마다 마음이 안 좋다“는 말, 그리고 F처럼 마을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 즉, “∼그런 마을이 들 때 마다 이 마을이 나한테 더 가치 있고 더 마음이 간다”는 말이 그렇 다. 특히 F의 “∼ 이 부락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모를 거다”라는 말은 마을에서 살아온 이들 만의 장소애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이러한 생각은 비단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고령자 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태어나서 자라면서 어른들한테 배운 배를 탔고(어부 생활을 의미), 지금은 할 수 없어서 장사(카페)를 하는데, 이마저도 이제 못하게 한다고 하니(마을소멸을 의미) 지금 살고 있는 이 동네에 마음이 더 갑니다. 저렇게 떠들수록 우리가 이 동네를 지 켜야겠다는 생각을 더 들게 합니다. 젊은 나도 이 동네가 나한테 전부인데 나(나이 를 의미) 많은 사람들(노인들을 의미)한테는 더 합니다.” (G, 40대, 남성)
“나가라고 할수록 우리 동네를 더 생각하게 되고 우리끼리 이 동네에 대해 더 말 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이 동네가 어떤 동네인지에 대해 말들입니다. 20대일 때는 싫 을 때도 있었고 그래서 밖(부산 시내를 의미)에 나가 살려고도 했지만, 그래도 이 동 네에서 내가 자라면서 여기에 익숙해졌고 나도 이 동네에서 어른이 되어가고 내 자 식들도 그렇고. 이제는 뗄 수가 없습니다.” (H, 40대, 남성)
G의 ‘떠든다’는 표현은 정부가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을 두 번 철회했다가 세 번째로 또 추진했다가 한 이력을 말한다. 마음이 더 가고, 또 마을이 자신에게 전부라는 생각이 마을소 멸을 앞두고 있는 이때 더 많이 든다는 것이다. H 역시 마을이 소멸된다고 하니 동네를 더 생각하게 되고 마을로부터 자신을 떼려고 해도 뗄 수가 없다는 마음도 지니게 된 것이다. 이 들 역시 마을이 소멸될 것이라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런 마음이 새삼 들었을까? 오히려 H는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 도시로 나가 살려고 하는 마음이 더 들었는데, 지금은 마을이 없어진 다는 생각에 애착의 마음이 더 체감된다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어떤 대상이 사라진다고 하면 그 대상의 존재를 더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마음일 수 있다. 마을 역시 그렇다. 하지만 장소로서 마을은 단순히 그 존재감을 더 생각한다기 보다 는 그 마을이라는 장소가 준 애착의 마음이 더 들게 한다. 장소애착의 마음에는 장소근원성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자신의 뿌리 즉 근원에 대한 의식을 더 높인다는 점에서 단순히 어떤 대상 의 사라짐과는 구별된다.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장소애착의 정도가 강하게 드러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사라질 마 을을 대신해서 지금의 마을 사람들이 어디가 되건 한 곳에서 모여 살 곳을 마련해 달라는 요구에서 찾을 수 있다. 심지어 이주 대책으로 아파트를 마련해 준다고 하면 같은 동에 마을 주민들을 다 같이 배정해서 현재와 같은 마을사람들 간의 삶이 이어지도록 해달라고 주장할 정 도이다. 오랫동안 삶의 장소로서 마을을 토대로 형성된 마을주민들의 장소애착이 비록 원래 의 장소인 마을은 사라지더라도 그 대안이 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이주 단지, 같은 동의 아파트 등) 장소애착의 심정을 느끼게 해주었던 기존의 마을과 같은 장소 역할을 하는 여건이 마련되기를 바라고 있다. 마을을 장소로 하여 형성된 장소애착의 지속성을 강조하는 것과 동시에 그 애착의 마음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이 는 김민주(2019: 269)의 연구에서 진행한 인터뷰와 본 연구의 인터뷰 모두에서 알 수 있다.
“우리가 낯선 동네에 가서 사는 것이 힘들 텐데, 그럼 다 같이 살 수 있는 이주단 지를 만들어서 주면 지금 이 동네 같지는 않아도 그래도 이 동네에서 살았던 사람들 이 옛날 기억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김민주, 2019: 269)
“이주단지가 안되면 아파트라도 지어서 그 아파트 단지나 아니면 동이라도 우리 동네 사람들이 모두 다 같이 살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합니다. 그래야 지금처럼 만나 서 지내기도 하고 그 아파트를 동네 삼아서 생각해도 되니깐…”(김민주, 2019: 269)
“쫓겨나더라도 다 같이(마을주민을 지칭) 지금처럼 살 수 있게 해주는 곳으로 쫓 겨나야지. 조상대대로 살아온 이 터가 없어지면 다른데 가서라도 지금처럼 다 같이 터를 잡고 다 같이 살아야지.”(C, 80대, 여성)
이들은 현재의 마을이 사라지더라도 ‘다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 금의 마을이 이들을 다 같이 살게 해준 것처럼, 그래서 장소애착과 같은 마음이 생긴 것처럼, 대안적 장소를 통해 장소애착을 지속시키고 싶어 한다. 장소애착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 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마을이라는 장소로부터 생긴 장소애착이 그 마을이 소멸하려 할 때 오 히려 더 강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무장소성 증가
무장소성(placelessness)은 장소가 지닌 장소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획일적이고 단순하 고 밋밋하고 의미 없는 패턴을 말한다(Relph, 1976). 주로 장소의 상실을 무장소성으로 표현 하는데, 이는 물리적 장소가 사라진 것이라기보다는 장소가 장소 고유의 장소성을 발현하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데 주로 사용한다. 장소의 상실 즉, 무장소성 현상이 아주 먼 과거에도 없 었던 현상은 아니지만, 특히 도시가 성장하고 발전하면서 장소적 경험 없이 획일적 건축물이나 공간이 들어서면서 나타나는 특징을 말한다. 어느 도시를 가도 똑 같은 모습의 건축물들이 지배하고 있는 모습과 같다. 더 쉽게 말하면,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중소도시들의 신시가 지로 불리는 곳에 가보면 높은 상가 건물들이 줄지어서 상권을 형성하는 거의 모두 비슷한 모 습을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무장소성과도 같다.
Relph(1976)가 자세히 설명하듯이 대개 무장소성은 근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개발이나 발전에 따라 나타난다. 그래서 곧 소멸할 수도 있는 대항마을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일거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대항마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무장소성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앞서 ‘마을의 대외적 존재감 향상’에서도 언급했던 동남권 신공항 건설에 따라 보상금을 기대 한 투자자들의 무분별하고 획일적 주택 공사가 대표적이고, 또 갑작스럽게 생긴 카페와 같은 상업시설의 영향 때문이다. 난개발로 비춰질 만큼의 장소적 경관 훼손을 넘어 마을 고유의 장 소성을 경험할 수 없도록 마을의 지형 자체를 바꿀 정도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지 역방송에서도 보도되었고, 본 연구의 현장조사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대항마을에는 3층 이상의 주거지는 전혀 없었고 2층 주거지도 한 곳 뿐이었다. 일정규모 이상의 상업시설도 전혀 없었던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마을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위 사진에서도 확인되듯이 똑 같은 조립식 건물로 줄지어서 지어 진 주거지도 많이 존재한다. 이런 주거지는 보상금을 위한 투자 목적의 주거지이기 때문에 거 의 비워져 있다. 아래 말처럼 ‘마을을 망쳐놨다’거나 ‘공장처럼 지어 놓다’, ‘성냥갑 집’, ‘버려 놓다’라는 표현은 기존 장소성의 경험을 주는 마을 형태가 아닌 것을 말한다.
“저렇게 똑 같은 집을 막 지어놓고 누가 사는지도 모르지. 짓기만 해 놓고 살지 않으니. 마을 곳곳에 예전 같으면 논과 밭인데, 거기다 저렇게 무슨 공장처럼 지어 놓고 있으니 완전히 마을을 망쳐놨습니다.” (A, 70대, 남성)
“완전 성냥갑 집들처럼 집들을 찍어서 가져 오고 이러더만. 하나씩 야금야금 생기 더니 이제는 동네가 희한하게 되었습니다. 동네를 버려놨습니다.” (I, 50대, 여성)
심지어 이제는 지역주민 중에도 자신의 땅에 카페를 지어서 운영하거나 식당을 하기도 한 다. 많지는 않지만 젊은 층을 중심으로 불가피하게 선택하는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그 불가 피함이란 생계 때문이다. 마을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변화에 따라 선택한 결과라고 스스로 도 말을 하고 있다.
“이제 고기 잡은 것(어부)은 다 틀렸고, 관광객들이 마을로 오고 외지인들도 땅을 사서 장사(카페 운영)를 하는거 보니 그런게 기회라고 생각됩니다. 저도 그래서 이렇 게 막 시작했습니다.” (G, 40대, 남성)
“지금까지 고기잡고 농사짓고 살았는데 이제 할 수 있는게 뭐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렇게 너나 없이 건물지어서 장사하는 집들이 쭉 생기고 있으니 그럼 나도 해보자 (식당)해서 동조하게 되었습니다.” (J, 50대, 남성)
한편, 이러한 무장소성의 모습은 앞서 ‘마을 내 장소성 자산 발굴 확대’의 내용과 다소 배 치되는 듯 보일 수 있다. 장소성 자산이 발굴된다는 점은 장소성을 보여줄 장소자산의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여기서 말하는 장소성 자산 발굴과 무장소성은 서로 관련성 이 높다. 장소성 자산이 발굴된 것은 맞지만, 그 외형적 모습은 여느 관광지 모습을 띠고 있 기 때문이다. 대항마을에서 장소적 경험을 줄 장소가 될 만한 자원(예, 인공동굴, 포진지 등) 을 발굴하여 여러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해주었지만 그 외관이나 운영은 여느 관광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항마을의 인공동굴이나 포진지는 역사적 내용면에서는 대항마을 고유의 것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부산시에서도 관광명소로 소개할 정도로 관광자원으로 개발한 탓 에 더욱 그렇다. 이는 아래 인터뷰처럼 대항마을 주민들이 자신들의 마을에 각종 개발 사업이 진행되는 것은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개발되는지도 잘 몰랐던 상황에서도 알 수 있 다. 결국 외부 투자자들의 투자로 우후죽순으로 성냥갑과 같은 비슷비슷한 건축물들이 갑작 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나, 장소성 자산에는 해당되지만 결국 여느 관광 명소처럼 만들어져 버 린 마을 내 장소자산의 발굴 결과는 무장소성의 양산으로 이어진 것이다. 소멸될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역설적으로 개발과정을 거치면서 무장소성이 나타난 것이다.
“뭔가 공사를 한다고는 하던데 그게 예전에 우리가 알던 그 동굴 공사인지는 몰랐 습니다. 어느날 보니 저렇게 근사하게 만들어놨더만. 우리가 다른 지역의 관광지에 놀러 가듯이 여기도 저것(대항항 인공동굴을 지칭) 때문에 완전 관광지가 됐지.” (E, 70대, 여성)
요컨대, 대항마을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정부의 대규모 사업으로 인해 마을소 멸이 확정된 마을에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마을의 대외적 존재감이 높아지고 장소자산의 발굴 도 확대되며 주민들의 장소애착 감정도 높아졌다. 또 무장소성도 함께 증가했는데, 이 역시 소멸될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마을이라는 장소 혹은 마을 내 장소가 부각됨에 따라 역설적으 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이처럼 본 연구를 통해 크게 네 가지 역설적 현상을 목격할 수 있고, 이들의 공통점은 사라질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장소가 더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사라져 가는 것이 오히려 더 부각되는 것은 역설적 현상이다. 마을의 소멸과 마을의 존재감 간 관계가 반 비례 관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분석결과는 어떤 함의를 주는 것일까?
연구의 함의와 결론
지금까지 분석한 결과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정부의 대규모 사업이 진행될 때 사업 대상지인 작은 마을은 상당히 낮은 위상으로 주체가 아닌 객체로 존재하 고 있다는 점이다. 본 연구의 사례인 동남권 신공항 사업은 정부의 대규모 사업으로써 마을 (주민)의 의지나 의도에 의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시작(동남권 신공항 사업 결정 및 추진)도 그렇지만,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모습은 더욱 그렇다. 다시 말해, 마을의 존재감이 높아진 이유나 장소자산의 발굴이나 장소애착의 감정 발현 및 무장소성 모두 마을이 주체가 되어 진행 된 것도 아니었고, 마을이 주체가 된 어떤 행위로부터 파생 결과도 아니었다. 그 주체는 정부 였다. 마을소멸도 정부에 의해서 나타난 것이고, 따라서 그로 인해 나타난 역설적 현상의 시 초도 정부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크게 두 가지 함의를 도출할 수 있다. 하나는 마을소멸 을 야기한 대규모 정부사업과 소규모 마을 간의 관계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소멸 과정에서 나타나는 역설적 현상에 관한 것이다.
첫째, 사업 규모와 사업 대상지 규모 간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그 문제란, 사업 대상지가 작은 마을일 경우 마을(주민)이 쉽게 간과된다는 점을 말한다. 이는 그동안 대규모 정부사업을 추진할 때 사업 대상지로써 작은 마을이 얼마나 고려되었는지 혹은 간과되었는지 되돌아보게 해준다. 이에 대해서는 단적으로 이런 의문을 표시하며 되물을 수 있 다. “인구가 많은 도시 지역의 마을을 정부가 해당 마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을소멸을 동반 하는 대규모 사업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역설적 현상까지 초래하게 하였을까?” 본 연구의 사례인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처럼 정부의 사업은 ‘대규모’이면서 동시에 사업의 대상지는 마을이되 도시 지역 마을도 아니고 또 인구가 많은 마을도 아닌 비도시지역(소위 말하는 시골)의 ‘소규모’ 마을인 상황이 ‘아니라면’ 어땠을까라는 궁금증이다. 아마도 그런 마을에 대해서는 애 초에 마을소멸을 이끌 대규모 사업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시지역에 위치하면서 인 구도 많은 대규모 마을이 행사하는 힘에 의해 적지 않은 갈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대규모 사업을 추진할 때 사업 자체의 규모와 사업 대상지인 마을의 규모는 결코 가볍게 여길 요인이 아니다. 사업 규모나 사업 대상지 규모와 같은 요인은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될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사업을 추진하고 진행하는 입장(주체)에서는 ‘대규모 사업-소 규모 사업 대상지’로 구성된 경우라면 비교적 쉽게 사업 추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규모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 자체가 법률에 의한 확실한 근거로 추진한다는 것이고, 또 그 규모로 결정 될 정도라면 이미 정치적 정당성까지 획득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남권 신 공항 건설 사업은 여당과 야당 간 정치적 입장 차이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더 추진하려 고 경쟁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 정당성도 쉽게 확보되었다.5) 따라서 확 실한 근거에 기초한 대규모 사업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면 조그마한 사업 대상지 는 큰 문제나 걸림돌로 여겨지지 않는다. 어쩌면 마을소멸 결정을 두 번 철회하고 세 번째 반 복해서 추진하면서, 또 역설적 현상이 나타나는 과정에서 정부가 마을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 던 것은 정부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사업의 규모가 사업지의 규모를 훨씬 능가 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마을을 고려하는 것은 오히려 시간이나 비용 측면에서 보면 비효율적 일 수 있다. 그들(마을 또는 마을주민)을 간과해버리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그렇지만 공간과는 다른 장소의 의미처럼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또 별로 목소리를 낼 줄 모르는 마을사람들이라도 그들은 마을이라는 장소에 의해 그리고 그 속의 여러 장소 지점들 에 의해 정체성을 형성해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 대한 고려가 더 이상 간과되지 않도록 해 야 한다. 그 고려의 방식은 매우 다양하겠지만, 본 연구의 인터뷰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최소 한 마을주민들이 체념의 심정으로 힘없이 그냥 쫓겨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마을을 장소로 여긴 이들이기 때문에 그 장소성을 이어가거나 그 심정을 보듬을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그들의 말대로 ‘대안적 장소’가 마련되는 것 은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만일 이주를 하게 된다면 그들의 희망에 따라 집단 이주에 따른 장소 제공 등의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정부가 불가피하게 마을 소멸을 낳는 대규모 사업을 추진할 때, 사업 규모와 사업 대상지 간 규모 차이로 인해 작은 마을을 쉽게 간과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고, 동시에 마을로부터 생겨난 장소 및 장소성의 연속이 보 장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둘째, 마을소멸을 앞두고 역설적으로 장소가 더 부각되지만, 그 장소가 장소성을 낳는 것과 는 다른 형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장소라는 소재는 동일해도 장소성을 낳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장소로써 마을이나 마을 내 장소자산이 마을주민들에게 경험 하게 해준 장소성이 대규모 정부사업에 따른 마을소멸의 역설적 현상으로 부각된 장소로부터 는 나타나기 힘들다. 무엇보다도 해당 장소와 마을주민 간 상호작용에 따른 오랜 축성(祝聖) 이 없다. 대외적 존재감 향상이나 장소성 자산의 발굴 확대 그리고 무장소성의 증가는 결국 관광객이나 외지인들의 방문이나 또 부동산 투자자의 투자를 촉진시켜 장소로서 마을 그 자 체나 마을 내 장소자산의 인위적 변화를 이끌고 있는데, 그 인위적 변화란 장소로부터 시작되 는 것이긴 하지만 장소성이 만들어지는 것과는 다르다. 또 다른 역설적 현상인 마을주민의 장 소애착이 강화되는 것도 과거부터 축적되어 온 장소에 대한 그들의 리듬과는 다른 마음(애착) 의 소요(騷擾)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장소와 장소성을 가능하게 한 마을이 소멸될 때 그 역설적 현상으로 장소가 부각되는 현상은, 겉으로는 마을소멸 상황임에도 장소가 더 부각되 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장소성이 없는 장소만 부각되는 결과이므로 어쩌면 한편으로는 추가적으로 역설적인 마을소멸의 진행과정일 수 있다. 다시 말해, 마을소멸을 앞둔 곳의 장소 가 부각되는 것도 역설이지만, 사실은 그때의 장소 부각은 장소의 생명력이 되는 장소성을 낳 지는 못하므로 실제로는 마을소멸이 제대로 경로를 가고 있는 것과 같다는 점에서 기존 역설 에 추가된 또 다른 역설이 되는 것이다.
한편, 본 연구는 마을소멸의 특수한 사례를 분석하여 함의를 도출하였다. 그래서 도출된 함의의 확장성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으나, 오히려 그 점은 일정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마을소멸 사례의 특수성이 마을소멸 과정에서 마을의 장소 및 장소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비교적 선명히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가덕도 대항마을의 예 정된 소멸은 외적 요인으로서 정부에 의한 인위적 마을소멸에 해당한다. 이는 앞서도 언급하 였듯이 인구감소 등으로 자연스럽게 감소하는 마을소멸과는 다른 형태이다. 그런데 외적 요인에 의한 인위적 마을소멸이 예정된 마을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장소성에 대한 체감도가 더 높다. 인구감소 등의 누적된 요인에 의해 스스로 소멸단계에 이르는 자연적 소멸과는 달리 외적이고 인위적 마을소멸의 경우, 그 마을은 현재 여러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장이고 동 시에 인위적 마을소멸 계획이 없었더라면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곳으로 여겨지는 곳이기 때 문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강제력 기반의 인위적 소멸이 예정되면 마을(주민)에 형성된 장소 성은 여러 대상의 심적 체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김민주, 2019). 이는 마을 스스로의 자연 적 소멸과정을 거친 경우보다 본 연구와 같이 외적 요인에 의해 인위적으로 마을소멸을 겪는 경우에 더 잘 확인된다. 마을은 그 자체가 장소이고 그 속에 여러 장소자산이 있고 그로부터 생기는 장소성이 곧 생동감이라는 점에서, 인위적 마을소멸이 자연적 마을소멸 보다 장소성 변화에 더 극적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분석한 가덕도 대항마을의 사례는 비록 마을소멸의 특수한 사례에 해당되지만, 오히려 마을소멸이 진행될 때 마을의 장소성이 고려되는 정도를 판단하는데 더 유용한 경험적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데 의미가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마을 사례가 분석되었기 때문에 향후 추가적인 사례 분석 을 통한 후속연구는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 본 연구가 선행사례 분석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그리고 본 연구는 위에서 밝힌 함의와 더불어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 업에 유용한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출처 : 한국지방행정연구원 / 대규모 정부사업에 따른 마을소멸 위기와 그 역설 : 가덕도 대항마을을 중심으로 / 김민주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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