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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핀란드의 정책적 노력사회복지 2023. 4. 14. 13:43
연금제도 개편
핀란드 연금제도는 크게 소득비례연금(earnings-related pension)과 국가연금 (national pension)으로 나누어진다. 소득비례연금은 개인의 노동기간과 연금기여분 에 비례하여 그 급여액이 결정되는 연금이고, 국가연금은 은퇴 연령 전 노동기록이 없거나 소득비례연금에 가입되어 있지만, 그 급여액이 일정 수준 이하인 사람들에게 지급되는 연금으로서 노인이나 장애인들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주기 위한 제도 다. 국가연금은 은퇴 이후 최소한의 소득보장을 목표로 지급되므로 그 전체 급여액이 상대적으로 적어 고령화로 인한 재정 부담 관련 논의에서 크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반면, 소득비례연금을 위한 재정 규모는 고령화에 따라 크게 늘 것으로 예측됨에 따 라 핀란드는 이미 수십 년에 걸쳐 여러 차례 관련 제도를 개편하고 있다.
핀란드의 소득비례연금제도는 1961년 임금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도입되었고, 1970년 부터 농부와 자영업자들도 이 제도의 적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빈번한 제도의 수 정이 있었지만, 핀란드 연금제도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개혁은 2005년부터 실시되었 다. 이 개혁의 가장 큰 목표는 평균 퇴직 연령을 2~3세가량 늦추고, 기대수명이 늘어 난 현실에 맞게 연금제도를 수정하는 것이었다. 이 개혁안을 도출하기 위해 노동자단 체와 사용자단체는 2001년부터 협상을 시작하여 2002년 9월에 최종 타결을 이루었 다.
2005년 연금 개혁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연금개시연령을 다변화한 것이다. 기존에 일반적인 은퇴 연령은 65세였지만, 2005년 개혁은 이 연령을 63세부터 68세 사이에서 연금수령자가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둘째, 조기퇴직연금(early retirement pension)을 원칙적으로 폐지했다. 당시 1944년 이전에 출생한 임금노동 자와 자영업자 그리고 특정한 조건에 따라 지방정부에서 근무하는 1947년 이전 출생 자들에게만 조기퇴직연금이 허가되었다. 셋째, 소득비례연금제도 가입 연령이 만 18 세로 낮추었다. 이전에는 만 23세에 얻은 노동소득부터 소득비례연금제도의 적용을 받았었다. 넷째,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발생하는 소득 역시 소득비례연금급여액 계산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실업급여, 육아휴직수당, 상병수당 등도 연금급여액 과정에서 소 득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섯째, 기대수명계수가 도입되었다. 1947년 이후 출생자부터 62세가 되는 사람들에게 적용될 기대수명계수가 매년 결정되어 소득비례 연금급여액 산정에 적용되었다. 마지막으로 고령 노동자의 연금기여금이 증가하였다. 2005년 연금 개혁에 따라 53세 이상 노동자의 연금기여금은 53세 미만 노동자보다 약 30% 증가하였다.
2005년에 시작된 개혁이 2016년까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2014년 9월 새 로운 개혁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2016년 9월 노·사·정 협의체는 2017년부터 적용될 새로운 개혁안에 합의했다. 합의 과정에서 노동자단체들 사이에 연금수령액 계산기준에 대한 이견이 있었지만, 다수의 노동자단체와 고용자단체가 동의한 안이 최종 확정되었다.
2017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연금 개혁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2016년 까지 만 63세가 되면 은퇴할 수 있고 연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 연령을 단계적으 로 늘려 2027년에는 최소 만 65세가 되어야 은퇴할 수 있도록 조정하고 있다. 따라 서 1955년생의 은퇴 연령은 63세 3개월로 바뀌었고, 이후 출생연도가 1년씩 늦을수 록 은퇴 연령은 3개월씩 늦춰지고 있다. 다만, 신체적, 정신적으로 부담이 큰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최소 은퇴 연령은 변함없이 63세가 적용된다.
둘째, 임금노동자의 연금 가입 최소연령을 만 17세로 낮추었다. 기존 연금 가입 최 소연령은 만 18세였다. 셋째, 2017년부터 연금급여액 산정에 필요한 연금적립률 (accrual rate)을 연 1.5%로 고정하고, 기준 임금은 ‘총 노동기간의 평균임금’으로 결정했다. 2016년까지는 매년 다른 연금적립률이 각 연도의 임금에 적용되었다. 다만 기존 연금 가입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2017년 연금 개혁 이후에도 2017년부터 2025년까지 53세에서 62세에 해당하는 연금 가입자에게는 1.7%의 연금적립률이 적 용된다.
셋째, 은퇴 연령 이후에도 연금기여금을 납부하고 연금 수령 시기를 미루면, 연금급 여액이 증가하고, 연금을 일찍 수령하기 시작하면 연금급여액이 감소하도록 제도가 수정되었다. 즉, 은퇴 연령 후에도 추가로 기여금을 납부할 경우, 연금수령액은 1개월 마다 0.4%씩 1년에 총 4.8% 증액되는 것이다. 반면, 만 61세부터 예상 연금급여액의 25% 또는 50%를 미리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었고, 대신 이 경우에는 은퇴 연 령 후 연금급여액이 사전 수령 기간 1개월마다 0.4%씩 감액되어 지급된다.
마지막으로 2017년부터 민간 산업부문의 연금기여금을 종업원 소득의 24.4%로 증액 하기로 결정하고, 노동자의 나이에 따라 개인 기여율에 차이를 두었다. 2021년까지 24.4%로 유지되었던 민간 산업부문 연금기여율은 2022년에 23.85%로 다시 증가하였 다. <표 1>은 2021년과 2022년의 산업부문별, 직종별 연금기여금 비율을 보여준다.
<표 1> 핀란드 산업부문별, 직종별 연금기여율 고령 노동자의 근로기간 연장을 위한 정책
1994년부터 1999년까지 핀란드 노동자들의 평균 은퇴 연령은 남성이 59.8세, 여성 이 60세 수준으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 비해 낮은 수준이었다. 이 당시 이미 핀란 드의 인구 고령화는 시작된 상태였고, 2010년부터는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발표됨에 따라 1990년대 말부터 핀란드 정부는 고령 노동자의 은퇴 시기를 늦추기 위한 다양한 “활동적 고령화 정책(Active Ageing Policies)”을 추진하기 시작 했다.
활동적 고령화 정책을 위한 국가 주도의 첫 번째 프로그램은 1998년부터 2002년까 지 400만 유로의 예산이 투입되어 진행된 “National Programme on Ageing Workers(FINPAW)”였다. 당시 세계화와 자동화가 확산됨에 따라 21세기 들어 핀란 드 노동시장은 구조적으로 상당한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되었고, 이렇게 변화된 노 동시장에서 고령 노동자들은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8년부터 핀란드 사회보건부, 노동부, 교육부가 공동으로 FINPAW를 수립·추진하였다. 이 프로그램의 궁극적인 목표는 45세 이상 64세 이하 노동자들이 가능한 오랫동안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은퇴연령과 55세 이상 노동자의 고용률을 높이는 것이었다. 세부 정책 목표로는 관련 연구개발활동의 확대, 부분적 연금급여 지급 방안 활용, 유연한 노동시간모델 도입, 고령 노동자에 대 한 차별적 태도 해소, 평생학습 및 성인교육 확대 등이 포함되었다.
FINPAW가 추진 되는 동안 핀란드 조기퇴직자 비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이 프로그램 은 전반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FINPAW가 진행되는 동안 2000년에 두 번째 활동적 고령화 정책 프로그램인 “National Well-being at Work Programme”이 시작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직장에 서 노동자의 소진(burn-out)과 따돌림을 방지함으로써 직장 내 웰빙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소진과 따돌림과 같은 문제는 상대적으로 고령 노동자들이 경험하 기 쉽고, 이러한 문제를 방치할 경우 조기 은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고령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러한 프로그램이 추진되었다. 위와 같은 목표 달 성을 위해서는 직장 문화와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기 때문에 사회보건 부, 노동부, 교육부 외에 노동조합, 사용자단체, 자영업자단체, 농업종사자단체, 스포 츠단체, 교회 등 다양한 직종의 대표자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직장 내 웰빙 증진의 모범 사례 발굴 및 홍보, 관련 연구 결과의 활용, 직장 문화 개선 컨설팅 및 자금 지원, 관련 법률 개정 등 네 가지 접근법이 활용되었다. 따라서 다양한 홍보자 료들이 발간되어 전국 사업장에 배포되었고, 직장 내 웰빙 관련 전문가들이 직접 개 별 사업장을 방문하여 컨설팅을 실시하였으며, 이 프로그램의 프로젝트 책임자는 직장 내 웰빙의 중요성과 개선 방안을 알리기 위기 매년 100회 이상의 강연을 했다. 그 리고 이 프로그램의 다양한 결과물을 바탕으로 새로운 핀란드 산업안전보건법 (Occupational Security and Health Act)과 직장보건서비스법(Occupational Health Care Act)이 마련되었다. 2003년까지 4년 동안 지속된 이 프로그램에는 약 750만 유로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2003년부터 핀란드 정부는 고령 노동자의 고용 증진을 위해 “VETO”, “NOSTE”, “KESTO” 등 3가지 프로그램을 동시에 추진하였다. 핀란드어로 “끌어당김”이라는 뜻을 가진 VETO 프로그램은 고령 노동자들이 최대한 오래 고용 상태에 머물 수 있도 록 그들의 직장 내 웰빙과 재활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으로서 2007년까지 추진되면 서 산업안전보건 및 직업재활 관련 기관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기본적으로 VETO 프로그램은 FINPAW의 후속 조치라고 볼 수 있다. 2009년까지 진행되었던 NOSTE 프로그램은 저학력 성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노동시장에서 경력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교육과 직업 훈련 제공을 목표로 추진되었다. 이러한 목표에 알맞게 핀란 드어로 “들어 올림”을 뜻하는 NOSTE가 프로그램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이 프로그램 을 통해 컴퓨터 활용 능력을 비롯해 각종 기초적인 사무능력에서부터 개인 창업에 필 요한 지식까지 폭넓은 내용의 강의와 훈련이 제공되었다. 마지막으로 “지속시킴”을 뜻하는 KESTO라는 명칭의 프로그램은 고령화 사회에서 업무능력 증진과 노동시장 및 사회 참여 독려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고령화 사회의 노동시장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리더십과 경영방법을 교육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2007년까지 운영 되었다. VETO 프로그램은 사회보건부가, NESTE 프로그램은 교육부가, KESKO 프로 그램은 산업보건연구원이 각각 담당했다.
1996년부터 3기에 걸쳐 2010년까지 진행된 “National Workplace Development Programme” 역시 핀란드의 활동적 고령화 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 프 로그램의 목적은 생산성과 직장 생활의 질을 동시에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개별 사업장들의 작업과정, 직장 편성, 관리감독업무, 직장공동체, 작업 방식 등을 개 선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수행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1기는 1996년~1999년, 2기는 2000년~2003년, 3기는 2004년~2010년에 진행되었는데 전 산업부문에 걸쳐 약 1,800 개의 프로젝트가 실시되었고, 약 35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하였다. 핀란드 정부는 이 프로젝트들을 지원하기 위해 15년 동안 총 1억 유로 이상의 예산을 투입했다.
보건사회서비스 개혁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핀란드는 원칙적으로 보건복지서비스를 무상으로 제 공하고 있다. 특히, 의료서비스는 영국처럼 재원 대부분이 조세로 마련되고, 공공조직 이 서비스 제공의 중심이 되는 국가보건체계(National Health System)를 통해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제공된다. 하지만 재정적 문제로 인해 사용자 부담금을 부과하 는 때도 많다.
2021년 기준, 핀란드는 309개의 지방정부(municipalities)로 구성되어 있고, 원칙적 으로 개별 지방정부가 보건사회서비스 기획과 제공의 책임을 진다. 단, 인구 규모가 너무 작은 지방정부는 주변 지방정부와의 계약을 통해 보건사회서비스 전달체계를 공 유할 수도 있다. 보건사회서비스 제공을 위한 지방정부의 재원은 주로 주민들을 대상으로 20% 내외의 세율이 적용되는 지방소득세와 중앙정부로부터의 보조금으로 구성 된다. 이때 재정자립도에 따라 중앙정부의 보조금은 차등 지원되는데 재정의 50% 이 상을 중앙정부의 지원에 의존하는 지방정부가 절반을 넘는다.
법률에 따라 지방정부가 제공해야 하는 보건사회서비스는 1차 의료서비스, 치과 진 료, 사회복지상담, 긴급돌봄서비스, 재가서비스, 주거서비스, 시설보호, 가정돌봄서비 스, 재활서비스, 아동 및 가족서비스, 장애인서비스, 노인돌봄서비스, 약물남용방지서 비스 등으로 구성된다. 또한, 모든 지방정부는 주변 지방정부와 협력하여 병원지구 (hospital districts)를 구성하고, 2, 3차 의료기관을 운영함으로써 해당 지역 내 주민 들에게 전문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현재 핀란드에는 20개의 병원지구가 있다. 각 병원지구에는 3차 의료기관인 중앙병원(central hospital)이 한 곳 있고, 지역별로 2차 의료기관이 있다.
전통적으로 핀란드 보건사회서비스 제공은 주로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공공기관을 통 해 이루어졌지만, 최근 민간조직의 참여가 점점 늘고 있다. 민간 보건사회서비스는 지 방정부의 서비스와는 별개의 시장을 형성하여 제공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지방 정부와 민간조직 사이의 계약을 통해 민간조직이 지방정부를 대리하여 서비스를 제공 하기도 한다. 의료서비스의 경우 메힐라이넨(Mehiläinen)과 떼르베우스딸로 (Terveystalo) 등과 같은 기업형 민간 의료기관이 점차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고, 보육서비스의 경우에는 삘께(pilke)와 또우훌라(Touhula) 등 민간 프랜차이즈 어린이 집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고령화로 인한 노인돌봄서비스 수요 증가는 민간조직의 서비스 제공 참여를 빠르게 높이고 있다. 현재 핀란드 전체 보건사회서비 스 가운데 약 4분의 1이 민간조직에 의해 제공되고 있다(The Ministry of Social Affairs and Health of Finland, 2022).
핀란드는 인구 고령화에 대응하고, 보건사회서비스의 효율성과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20세기 말부터 보건사회서비스 개혁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새 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핀란드의 보건사회서비스 개혁이 추진되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2010년대에는 좀 더 구체적인 개혁안들이 제시되었지만, 정치 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해 좌초되고 말았다. 2014년 알렉산더 스뚭(Alexander Stubb) 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재정 부담 감축 방안을 중심으로 하는 보건사회서비스 개혁안 을 제시하였지만, 이 계획은 헌법이 보장하는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제한하 고 지역 간, 계층 간 불평등을 키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이후 2015년 총선거를 통해 중앙당(Centre Party), 국민연합당(National Coalition Party), 핀란드인당(Finns Party) 등 세 정당이 참여하는 중도우파 연합정 부인 유하 시삘라(Juha Sipila) 내각은 임기 시작과 함께 적극적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시삘라 정부의 개혁안은 주요 내용은 전국 18개 복지서비스자치주(wellbeing services county)과 복지서비스주의회(wellbeing services county councils)를 구성 하여 보건사회서비스 제공 책임을 2021년부터 기초지방정부에서 복지서비스지역으로 이양하는 것과 보건사회서비스 비용 절감을 위해 민간 서비스 공급자들의 참여를 확 대하고, 정보의 디지털화와 예산제도 개편을 통해 시스템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그러 나 개혁안 수립과 추진은 시민들의 폭넓은 의견 수렴 없이 관료와 정보통신전문가가 중심이 되어 진행되었고, 이로 인해 시삘라 정부의 개혁 추진은 현장 담당자들과 대 중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다. 또한, 2019년 초 핀란드 의회의 헌법위원회 (Constitutional Law Committee)는 이 개혁안은 민간 서비스 공급자 자격, 서비스 품질 모니터링, 개인정보보호 등과 관련하여 그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거나 헌법이 정 하는 평등의 원리를 위배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큰 폭의 수정을 요구했다. 2019 년 4월에 핀란드 총선거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헌법위원회의 이러한 결정은 사실 상 시삘라 정부의 개혁을 막은 것이다. 이에 유하 시삘라 총리는 임기 내 개혁 추진 불가를 인정하고 사의를 표함으로써 핀란드 보건사회서비스 개혁 시도는 또 한 번 실 패로 마무리됐다.
시삘라 정부의 개혁은 실패했지만, 개혁안의 적극적인 추진은 보건사회서비스 개혁 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더욱 높임으로써 2019년 총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부도 개혁 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게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현재 사회민주당(Social Democratic Party), 중앙당(Centre Party), 녹색당(Green League), 좌파연합당(Left Alliance), 스웨덴인민당(Swedish People's Party) 등 5개 정당이 참여하는 중도좌파 연합정부인 산나 마린(Sanna Marin) 내각은 2020년 12년 개혁안을 마련하여 의회에 제출하였고, 2021년 6월 핀란드 의회는 표결을 통해 현 정부의 보건사회서비스 개혁 안을 가결했다.
이번 개혁안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21개 복지서비스자치주를 새롭게 구성하여 기초 지방정부의 보건사회서비스 제공 권한과 책임을 복지서비스자치주로 이양하는 것이 다. 이것은 지난 정부가 제시한 개혁안 가운데 전달체계 개편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 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복지서비스자치주의 수를 18개에서 21개로 늘렸 다는 점이 다르다. [그림 1]은 현행 기초지방정부 중심의 보건사회서비스 담당구역이 개혁을 통해 어떻게 변할지를 보여준다. 각 주는 복수의 기초지방정부를 통합시켜 구 성될 예정이지만, 예외적으로 수도인 헬싱키는 인구밀도와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으므 로 기초지방정부인 헬싱키가 기존 방식을 유지하며 독자적으로 보건사회서비스를 제 공할 예정이다. 따라서 핀란드의 보건사회서비스 담당 행정구역은 21개 복지서비스자 치주와 헬싱키로 구성된다.
복지서비스주의회 구성과 보건사회서비스 제공의 권한 및 책임 이양을 추진하기 위 해 핀란드는 우선 2021년에 “보건서비스 및 사회복지서비스 조직에 관한 법률(Laki sosiaali- ja terveydenhuollon jarjestamisesta 612/2021)”을 비롯해 12개의 법률 을 제정했고, 100개 이상의 관련 법률을 수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2022년 1월 23일 에 핀란드 역사상 처음으로 복지서비스주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를 실시했다. 복지서 비스주의회가 구성되면 준비 기간을 거쳐 2023년 1월 1일부터 복지서비스자치주 중 심의 보건복지서비스 전달체계가 작동할 예정이다. 현재는 기초지방정부와 병원지구 소속 인력으로 구성된 임시준비기구가 개혁을 위한 준비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후 복지서비스자치주가 보건사회서비스 제공을 주도하더라도 중앙정부가 서비스자문위원 회와 재정행정자문위원회 등을 설치하여 해당 지역의 서비스 품질과 전달체계를 감독 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사회서비스 최종개혁안이 추구하는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복지서비스자치주 에 사는 모든 이에게 평등하고 수준 높은 보건사회서비스 및 구조서비스를 보장한다. 둘째, 서비스의 양과 접근성을 개선한다. 셋째, 건강과 복지와 관련된 불평등을 줄인 다. 넷째, 전문 인력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한다. 다섯째, 고령화와 저출산의 문제에 대응한다. 여섯째, 비용 증가를 억제한다. 시삘라 정부의 개혁안은 민간 참여 확대와 정보통신기술의 활용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과 달리 의회를 통과한 개혁안은 보건사회 서비스 이용자 사이의 불평등 완화를 강조한다. 이를 위해 마린 내각은 공공부문 보 건사회서비스 인력 수급 및 양성을 위한 정책에 재정 투입을 늘리고 있다. 또한, 의 료서비스 품질 제고를 위해 민간 의료기관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 아닌 공공의료 인 력에 대한 처우 개선에 중점을 두고 있다.
복지서비스주의회의 구성으로 기초지방정부의 세입과 예산제도에도 큰 변화가 예상 된다. 현재 기초지방정부가 주민들의 소득을 대상으로 직접 지방세를 거두어 보건사 회서비스 재정을 마련하고 있지만, 새로운 전달체계가 완성되면 지방세 비율이 크게 낮아져 기초지방정부의 세입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반면 중앙정부가 걷는 소득세율 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늘어난 중앙정부의 세입은 복지서비스주의회에 배분될 예정이 다. 단, 국민 개인이 부담하는 세금 규모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핀란드 정부는 밝 히고 있다.
보건사회서비스 인력의 소속은 현재 기초지방정부에서 복지서비스자치주로 바뀐다. 약 172,900명의 소속이 바뀔 것으로 예상되지만, 개인의 고용 형태나 신분은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복지서비스주의회는 또한 보건사회서비스 제공을 위해 기초지방정부 가 기존에 구축한 자산과 채무를 모두 이전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중앙정부가 부담할 예정이다.
사회보장제도 개편
핀란드 사회보험청(Kela)은 복지 보편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생애주기에 걸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위험에 따라 폭넓은 급여를 제공한다. 사회보험청이 제공하는 급여는 징집, 장애, 가족, 주택, 이민, 연금, 재활, 상해, 사회부조, 학업, 유족, 실업, 통역 서비스, 자영업자 등 크게 14개 상황으로 나누어질 정도로 다양하다. 그 가운데 가족을 위한 급여에는 출산보조금, 엄마수당, 아빠수당, 부모수당, 아동수당, 아동돌봄 수당, 장애아동급여, 아동양육수당 등이 있는데 가정의 상황 바뀔 때마다 급여 신청자 가 적절한 급여를 찾아 직접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처럼 급여의 종류가 많고 처 리 절차가 복잡한 핀란드의 사회보장제도는 행정 비용이 많이 들고 이용자의 불편이 크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그리고 탈산업화, 고령화, 가족 형태의 다양화, 고용 형태와 노동시장 특성의 변화, 대규모 이민 등으로 인해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소득보 장 및 재분배 기능이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최근 들어 빠르게 늘고 있다. 한편에서 는 핀란드가 고령화 사회에서도 현재 수준의 복지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용률을 높여야 하는데 사회보장제도가 고용률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편될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0년대 들어 핀란드에서는 사회보장제도 개혁 논의가 시작되었다.
2017년 11월 16일, 유하 시삘라(Juha Sipilä) 핀란드 총리는 의회 원내 정당, 노동 자단체, 사용자단체, 주요 보건사회단체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을 위원으로 임명하여 의 회 소속 모니터링 그룹을 만들고, 이 조직을 통해 또이미(Toimi)라는 이름의 사회보 장제도 개혁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또이미 프로젝트의 목표는 고용률을 높이고, 불 평등을 줄이며, 일과 가족 구조의 변화에 대응하고, 디지털기술 활용을 통해 더 명확 하고 간단한 행정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Valtioneuvoston kanslia, 2019a). 그러 나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모니터링 그룹 위원들은 사회보장제도의 전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점에 합의하고, 이를 위해 장기적인 준비과정을 통한 개혁 추진을 제안하 였다. 또이미 프로젝트가 핀란드 사회보장제도 개편을 위해 제안한 사항은 다음과 같 다(Valtioneuvoston kanslia, 2019a).
- 사회보장제도 개혁은 장기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영역별, 단계별로 계획이 마련되어야 하고, 이에 따라 단계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복수의 정부에 걸쳐 추진될 개혁의 로드맵이 마련되 어야 한다.
- 개혁을 위한 준비는 다양한 부문의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의회의 절차와 정부 부처 간 협력을 통해 수행되어야 한다.
- 주거 지원은 주택정책과 연계하여 추진되어야 한다.
- 서비스 개발 역시 개혁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 국민에게 더 명확하고 실용적인 제도를 구축한다.
또이미 프로젝트의 제안에 따라 2019년 총선을 통해 집권한 사회민주당 중심의 중 도좌파 연합정부는 2020년 2월 14일, 장기 사회보장계획인 Social Security 2030 프 로젝트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 프로젝트가 제시한 목표는 다음과 같다(Finnish Government/Social Security Parliamentary Committee, 2020).
- 국민에게 더 명확하고 실용적인 제도를 구축한다.
-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고, 사회적 위험에 직면한 사람에게 소득을 보장한다.
- 고용, 창업, 자영업, 사회적 참여, 평생학습을 지원한다.
- 개인의 권리와 의무 사이에 균형을 맞춘다.
- 사회보장에 대한 인식과 지식을 높이고, 사회보장의 가치와 원칙에 대한 대 중적 논의를 촉진한다.
이후 핀란드 정부는 Social Security 2030 프로젝트 추진을 담당할 의회 소속 위원 회를 구성하고, 위원회 위원의 임기를 2020년부터 2027년까지로 규정했다. 현행 제도 의 문제점 파악과 광범위한 주제에 대한 검토와 분석은 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이루어 져야 한다는 기조에 따라 핀란드보건복지연구원(Finnish Institute for Health and Welfare)의 Pasi Moisio 박사가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프로젝트 추진 위 원회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핀란드 의회 원내 정당들은 미래 사회보장제도가 추구해야 할 방향을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Valtioneuvoston kanslia, 2019b).
- 사회보장제도는 헌법이 규정하는 복지 제공의 의무에 부응해야 한다.
- 사회보장제도는 사회 참여와 의미 있는 삶을 원하는 사람들의 욕구에 대한 대응을 높여야 하고, 고용, 활동, 평생교육을 지원해야 한다.
- 사회보장제도에 포함된 서비스와 급여는 서로 잘 연결되어야 한다.
- 정부의 재정 상황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사회보장제도는 개인의 권리와 의 무 사이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 사회보장제도는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준비되어야 한다.
위와 같은 합의 내용을 바탕으로 프로젝트 추진 위원회는 Social Security 2030 프 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2021년 12월, 위원회는 핀란드 사회보장제도의 문제점을 진 단한 현황보고서(position statement)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가 앞으로 프로젝트에 서 다루어야 할 다섯 가지 주요 쟁점은 사회보장제도의 복잡성, 사회보장과 고용의 조화, 기초사회보장제도와 주거, 서비스와 현금 급여의 조화, 평생교육과 직업능력 개 발 등이다(Sosiaali- ja terveysministeriö, 2021).
이후 위원회는 사회보장행정분과(hallintojaosto), 고용·직업능력분과(työllisyyden ja osaamisen jaosto), 주거분과(asumisen jaosto), 일·생활기능분과(Työ- ja toimintakykyjaosto), 연구·평가분과(tutkimus- ja arviointijaosto) 등 5개 분과를 구성하여 개별 쟁점별 개혁 로드맵을 준비하고 있다. 다섯 분과의 활동과 보고서를 종합하여 프로젝트 추진 위원회는 2022년 안에 핀란드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위한 2027년까지의 로드맵을 제시할 예정이다(Sosiaali- ja terveysministeriö, 2022). 2023년에 핀란드 의회 선거가 예정되어 있어 정권이 바뀔 가능성이 있지만, 이 위원 회는 법률에 따라 정권의 변화와 상관없이 2027년까지 사회보장제도 개혁 작업을 담 당한다. Social Security 2030 프로젝트는 이러한 작업을 바탕으로 2030년에는 핀란 드에서 새로운 사회보장제도가 작동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출처 : 핀란드의 고령사회 대응을 위한 재정정책 방향 및 시사점 / 신영규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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